Old Mission Santa Barbara Tour:
#1 신성한 정원
프란치스코회의 수사, 직원, 자원봉사자 모두가 올드 미션 산타바바라에 방문해 주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올드 미션 산타바바라(Old Mission Santa Barbara)는 선교 시대(1769~1833) 알타 캘리포니아에 프란치스코회 수사들이 설립한21개 미션 중 10번째 미션으로, 샌디에이고부터 소노마에 위치합니다.
미션에 들어서면 선교 수녀원인 convento에 입장하게 됩니다. 선교 시대에는 각 선교지의 수도원에 오직 한두 명의 수사만이 거주했으며, 세례를 받은 원주민 공동체의 규모는 수백 명에서 수천 명에 달했습니다.
convento는 지금까지도 올드 미션 산타바바라(Old Mission Santa Barbara)에 거주하는 프란치스코회 수사들의 보금자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수사들은 수녀원 스타일의 주택에서 함께 공동 생활을 하고 있지만, 다양한 사역을 통해 지역 사회에서 매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일부는 교육이나 의학 분야에 종사하며, 교구 사제로 활동하는 수사도 있습니다. 또한 고해와 사회 정의 운동에 헌신하기도 합니다. 수사들뿐 아니라 프란치스코회의 정신을 가진 모든 이들은 평화와 겸손, 관대함을 마음에 품고 공동선을 위해 봉사합니다.
현재 여러분이 계신 곳은 수도원에서 가장 오래된 영역인 안뜰입니다. 사각형으로 구성된 이 안뜰은 식민지 시대에 아메리카 대륙으로 진출한 스페인의 건축 양식입니다.
수도원은 복음과 교육의 중심지이며, 미션 시대에 이 곳은 다양한 교육과 노동의 집결지 역할을 했습니다. 이 공간에서 요리도 만들어졌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됐으며, 목판화와 방적모, 방직천 등 새로운 교역품에 대한 교육도 이루어졌습니다. 매일 아침 세례를 받고 수도원에 거주하는 추마시(Chumash)족 사람들은 이곳에서 한데 모였으며, 선교 관련 업무를 관리하는 mayordomo가 이들에게 임무를 배정했습니다. mayordomo는 퇴역 군인이 맡기도 했고, 수사가 선택한 원주민이 맡기도 했습니다.
1830년대에 미션 시대가 끝난 이후 수도원은 주로 수사들의 거주지로 활용됐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개방된 공간의 용도는 수차례 바뀌었고, 대부분 정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9세기 중엽에 이 정원은 유럽식 정원의 영향을 받은 기하학적 디자인으로 설계됐습니다. 이 사각형 안뜰을 부르는 이름은 다양하지만 20세기 중반에 들어 ‘신성한 정원’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지금까지도 창조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이 정원은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을 맞이하는 평온한 공간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자연을 돌보는 것 또한 프란치스코회 전통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프란치스코회 운동의 창시자였으며, 그는 말년에 인간과 자연의 연결을 강조하는 기도문을 집필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피조물의 찬가(The Canticle of the Creatures)에서 자연의 요소들이 인간의 형제, 자매라고 말하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설명했습니다. 미션 산타바바라에서는 사람과 환경을 비롯하여 신의 모든 피조물을 존중하고 돌보기 위해 매일같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2010년에 수녀원의 두 외벽은 심각한 붕괴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으며, 이를 수리하기 위해서는 120만 달러라는 거금이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구조물과 정원, 예술 컬렉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보수가 필요하며 그를 위한 비용도 결코 작지 않습니다. 미션 산타바바라는 주로 박물관 투어와 기념품 판매 수익을 통해 대부분의 재원을 자체적으로 충당하지만, 이러한 유산을 올바르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건물과 컬렉션을 소중히 여기는 모든 사람들의 후원이 꼭 필요합니다.
투어 루트의 앞에는 외로운 여성(the Loan Woman) 전시실과 선교 교회로 이어지는 입구가 있습니다.